
2025년 1월, 강릉 여행 중이었다.
갑자기 어지럽고 식은땀이 났다. 화장실에 갔더니 피가 떨어졌다.
항문외과를 찾았고 치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일단 지냈다. 오래 다니던 내과도 있었지만 바로 찾아가지는 않았다.
그렇게 약 7개월이 흘렀다.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내과를 찾았다. 증상을 말씀드리자 바로 내시경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예약하고 검사를 받았다. 진정이 덜 됐던 것인지 검사 중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회복실에서 정신을 차린 뒤 진료실로 들어갔다.
“암입니다. 빨리 큰 병원으로 가십시오.”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내 몸에 암이라니.’
집으로 돌아오니 분위기는 그야말로 초상집 같았다. 이제 내 삶이 끝나는 것처럼 느껴져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다음 날부터 큰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예약할 수 있는 곳은 일단 예약했다. 하지만 진료까지 2주, 3주를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던 중 친구의 도움으로 건국대병원에 예약이 잡혔다.
소화기내과에서 진료와 검사를 받은 뒤 황대용 교수님을 만났다.
직장수지검사도 받았다. 낯설고 민망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모든 과정이 당황스러웠다.
검사를 마친 교수님은 수술하자고 하셨고, 일정을 잡아주셨다.
나는 두려운 마음에 물었다.
“저 죽나요?”
교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다리를 붙잡았다.
“살려주세요. 살고 싶어요.”
그만큼 절박했다.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은 마음까지 들었다.
잠깐의 침묵도 길게 느껴졌다. 그러다 교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일어나요. 안 죽어요.”
그 말에 마음을 붙잡았다.
수술을 마친 뒤에는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다. 큰 고비를 넘겼으니 괜찮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에서 림프절 전이가 확인됐고, 3기라는 설명을 들었다.
다시 마음이 무너졌다.
지나온 생활이 떠올랐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고 술도 좋아했다. 그 시간들을 돌아보며 나 자신을 많이 탓했다.
‘조금 더 일찍 병원에 갔더라면.’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수술만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치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항암이 무엇인지, 어떻게 받는지조차 낯설었다.
퇴원 후에는 복대를 하고 열심히 걸었다. 먹는 것도 바꾸려고 했다.
식사에 신경 쓰는 일도, 달라진 배변에 적응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화장실 문제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어려움이었다.
드디어 항암 주사실에 들어갔다.
‘이렇게 주사를 맞는구나. 맞으면서 자면 되겠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치료 중 목이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무서웠다. 내게 항암치료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몸도 마음도 한계에 몰렸다. 모든 것을 놓고 싶을 만큼 절망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때 막내가 떠올랐다.
‘그래도 살자.’
나는 다시 마음을 붙잡았다. 걷고, 생활을 돌보고, 하루를 이어가려고 했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치료 과정에서 폐도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걱정은 계속됐다. 그래도 처음처럼 두려움에만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큰일을 겪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단단해지는 부분도 있었다.
웃을 수 있는 날에는 웃었다. 움직일 수 있을 때는 움직였다.
산에도 가고 동네도 걸었다. 내 표현으로는 ‘발발이처럼’ 부지런히 다녔다. 밥 먹고, 자고, 잠시 쉬는 시간을 빼면 자꾸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난 승리자가 될 거야!”
그 말은 내가 하루를 살아가는 다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에서도 반가운 변화가 느껴졌다.
가스가 줄었고, 외출할 때 배변 때문에 겪는 불편도 전보다 나아졌다. 밖에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 말이 조금씩 실감났다.
매일 걸을 수 있다는 것.
가족을 위해 청소하고 빨래할 수 있다는 것.
예전에는 당연했던 일들이 이제는 감사한 일이 됐다.
혼자 힘으로 버텨낸 시간들을 돌아보면 나 자신이 놀랍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
지금은 어려운 날을 견디는 나만의 방법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웃을 일을 찾고, 감사한 일을 떠올리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몸과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물론 힘든 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 하루를 어떻게든 지나왔고, 다음 날을 다시 맞이했다.
함께 투병하는 환우분들께도 말하고 싶다.
지금 힘들고 지치더라도 우리 잘 이겨내보자고.
내가 매일 걷는 길처럼, 각자의 속도로 하루하루 이어갔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걸을 수 있어 감사하다.
내 가족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어 감사하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눌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다.
나 자신에게 다시 한번 말해본다.
잘 버텨왔다. 오늘도 해보자.
※ 이 글은 대장암 환우 카페 ‘암행권’ 회원 유이맘님이 2026년 9월 11일 게시한 「나의 큰 사고 ~~~」를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치료 경과와 증상은 원문 작성 당시의 개인 경험이며, 본문의 자책과 생활에 대한 회고가 암의 발병 원인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