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 진단 후 식탁에서 가장 먼저 밥을 줄이는 사람이 있다. ‘암세포는 당을 먹고 자란다’는 이야기에 흰쌀밥과 빵, 과일까지 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암세포가 포도당을 이용한다는 사실이 탄수화물을 끊으면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치료 중 식사량이 줄고 체중이 빠지는 환자에게 무리한 음식 제한은 영양 관리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는 암에 관한 오해를 설명하는 안내에서, 암세포가 정상세포보다 포도당을 많이 소비하는 경우가 있지만 당을 먹으면 암이 악화되거나 당을 끊으면 암이 줄고 사라진다는 사실은 연구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세포의 에너지 대사와 환자의 식사 효과를 곧바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NCI
포도당은 암세포만 사용하는 연료가 아니다. 정상세포도 포도당을 이용하며, 몸은 탄수화물 섭취가 부족해져도 다른 영양소를 활용해 필요한 포도당을 만들어낸다. 밥을 먹지 않는다고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영양 공급이 중단되는 구조가 아니다. 암 대사를 연구하는 것과 일상에서 밥을 끊는 행동은 구분해야 한다. what you need to know
흰쌀밥과 설탕이 든 음료를 모두 ‘당’이라는 말로 묶는 것도 식사의 차이를 놓치게 한다. 밥에 들어 있는 전분은 탄수화물의 한 종류지만, 밥과 함께 무엇을 얼마나 먹는지에 따라 식사의 영양 구성이 달라진다. 단백질 식품과 채소 등을 곁들인 식사와, 단 음료로 많은 열량을 추가하는 습관을 동일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단 음식과 음료를 제한 없이 먹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세계암연구기금(WCRF)은 가당음료의 잦은 섭취가 열량 과잉을 통해 체중 증가와 과체중·비만을 유발한다는 강한 근거가 있다고 평가한다. 체지방 과다는 여러 암의 위험요인이다. 장기적인 체중 관리와 암 예방의 문제를 ‘밥 한 공기가 암세포를 키운다’는 설명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 www.wcrf.org
암 예방을 위한 식생활과 치료 중 영양 관리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항암치료로 입맛이 떨어지고 먹는 양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충분한 에너지와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럽임상영양대사학회(ESPEN)의 2021년 실무지침은 영양불량이 있거나 그 위험이 있는 암 환자에게 에너지 섭취를 제한하는 식사를 권하지 않는다. espen.org
대장·직장암 환자에게는 장 상태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장 수술 후나 설사 등으로 저섬유질 식사가 필요한 경우, 흰쌀밥은 활용할 수 있는 식품이다. NCI도 저섬유질 식품의 예로 흰쌀밥을 제시한다. 따라서 암 환자는 반드시 잡곡밥만 먹어야 한다거나, 흰쌀밥은 피해야 한다는 일률적인 기준은 적절하지 않다. 식사의 종류와 섬유질 양은 증상과 치료팀의 안내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 NCI
초저탄수화물·케톤식 역시 일반적인 암 치료 식단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표준치료를 대신하거나 모든 암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볼 근거는 부족하다. ESPEN 지침은 이러한 식사가 에너지 섭취 부족과 체중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시행을 고민한다면 먼저 담당 의료진과 임상영양사에게 영양 상태를 평가받는 것이 필요하다. espen.org
당뇨병이 있거나 치료 중 혈당이 높아진 경우에는 별도의 식사 조절이 필요할 수 있다. 이때의 목표는 혈당을 관리하면서 필요한 영양을 확보하는 것이다. ‘암을 굶기겠다’며 식사를 거르는 접근과는 다르다. 먹는 양이 계속 줄거나 체중이 의도치 않게 감소하고, 설사·구토·복통 때문에 식사를 유지하기 어렵다면 치료팀에 알려 식사 방법을 조정해야 한다.
흰쌀밥 한 그릇을 먹었다고 치료를 방해한 것은 아닌지 자책할 이유는 없다. 암 환자의 식사는 특정 영양소를 없애는 경쟁이 아니라, 현재의 몸과 치료 과정에 맞게 필요한 영양을 확보하는 과정이다. 밥을 무조건 끊기보다 식사량과 체중 변화, 혈당과 장 증상을 함께 살피는 것이 현실적인 관리 방법이다.
